켄쇼(見性): 월스트리트를 호령하는 인공지능

 

켄쇼(見性): 월스트리트를 호령하는 인공지능

 

 

11월 6일 아침. 대니얼 네이들러(Daniel Nadler)는 눈을 뜨자마자 오렌지 주스를 한 잔 따라 들고 랩탑 컴퓨터를 열었다. 곧 있으면 노동 통계청이 월간 고용지표를 발표하는 8시 30분이다. 네이들러는 뉴욕 첼시에 있는 아파트 부엌 식탁에 앉아 초조한 듯 컴퓨터 새로고침 키를 자꾸 눌렀다. 그가 세운 회사의 소프트웨어 켄쇼(Kensho)가 통계청이 발표한 데이터를 모아 한창 분석하는 중이었다. 2분 만에 켄쇼의 분석 내용이 보고서 형식으로 화면에 떴다. 짧은 전체적인 평에 이어 보고서는 과거 유사한 고용지표에 대한 시장의 반응을 토대로 투자 실적을 예측하는 도표와 그래프 13개를 정리해 보여줬다.

 

네이들러가 스스로 미리 꼼꼼히 검토해보려고 했어도 다 훑어볼 수 없을 만큼 수십 가지 다양한 데이터베이스에서 수천 가지 숫자, 자료를 모아 분석한 내용이었다. 8시 35분, 노동 통계청이 자료를 발표한 지 5분 만에 켄쇼가 내놓은 분석은 고객사인 골드만삭스에 제공된다. 켄쇼가 미국인 전체 임금 수준이 얼마나 올랐는지를 제대로 분석했는지 정도를 한눈에 확인하는 것이 네이들러가 자신에게 주어진 몇 분 안 되는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검토였다.

 

켄쇼의 가장 중요한 고객인 골드만삭스는 켄쇼의 최대 투자자이기도 하다. 올해 32살인 네이들러는 은행에서 실제로 켄쇼의 보고서를 받아보는 옵션, 파생상품 트레이더, 펀드 매니저 같은 고객들에게 보고서 내용이 어땠는지 확인하며 나머지 아침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점심 약속에 가려고 집을 나선다. 우버를 탄 네이들러의 목적지는 맨해튼의 웨스트사이드 하이웨이 바로 앞에 있는 골드만삭스의 통유리 건물. 이 건물에 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깔끔하게 다린 셔츠에 정장 차림이지만, 네이들러는 대개 루이뷔통 가죽 샌들에 알렉산더 왕의 단정한 티셔츠와 바지 차림이다. 네이들러네 집에는 이런 조합으로만 신발까지 열 벌이 있다.

 

이런 꾸밈없는 옷차림과 미적 감각은 하버드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던 중 여름이면 찾아가곤 했던 일본에서 배웠다. 네이들러는 일본의 여러 신사를 두루 다니며 명상 수련을 하곤 했다. (켄쇼라는 회사 인공지능 프로그램 이름은 우리말로 음을 달면 견성(見性)에 해당하는 한자어의 일본식 발음이다. 일본 불교의 선 사상에서 사물과 자연의 이치에 대한 첫 깨달음을 얻는 상태 혹은 그 깨달음을 일컫는 말이 켄쇼다) 네이들러는 여러 편의 고전적 연애시를 쓴 시인이기도 하다. 올해 그가 쓴 시를 묶어 파라 슈트라우스&지루 출판사가 책을 펴낼 예정이다.

 

네이들러를 만나 인터뷰한 날이 바로 노동통계청이 월간 고용지표를 발표한 11월 6일이었다. 인터뷰는 골드만삭스 빌딩 맞은편에 새로 지은 세계무역센터(1 World Trade Center) 건물 45층에 있는 켄쇼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열 명 남짓한 켄쇼 직원들이 큰 방 하나에 자유롭게 흩어져 일하고 있었다. 수족관에 사무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요란한 전자음악까지, 전형적인 스타트업 사무실의 모습이었다. 사무실 한편에 있는 사장실에는 폐기한 전신주를 고쳐 만든 넓은 책상과 겉에 천을 댄 큰 가죽 의자, 그리고 같은 천을 씌운 수납식 의자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사장실 문을 닫고 나서 곱슬머리에 하얀 피부를 지닌 네이들러는 수납식 의자에 앉았다. 발을 뒤로 빼고 앉은 네이들러는 이내 그날 골드만삭스 고객들로부터 받은 평가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다음번 보고서에는 어떤 내용이 포함됐으면 좋겠다는 조언도 있었지만, 켄쇼의 가공할 만한 일 처리 속도에 대한 감탄이 대부분이었다.

“와, 저라면 지금 저 정도 일을 하는 데 이틀은 꼬박 걸렸을 거예요.”

“아예 우리 팀에 딱 이런 일만 전담하는 사람이 있었는데요, 그냥 이렇게 보고서 만드는 게 그 사람이 하는 일의 다였어요.”

 

네이들러가 전한 사람들의 반응은 이런 식이었다. 잘난 척하거나 으스대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네이들러는 이런 상황을 진지하게 곱씹으며 켄쇼나 켄쇼를 비롯한 새로운 스타트업들이 금융업 전반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고 있었다. 앞으로 10년 안에 금융업계 종사자의 3분의 1, 많게는 절반 정도가 켄쇼나 다른 자동화 소프트웨어에 밀려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네이들러는 내다봤다.

 

주식 시세를 표시하는 일이나 실제 증권을 사고파는 일이 온라인에서 이뤄지기 시작하면서 저임금 사무직 직원들이 불필요해져 일자리를 잃었다. 이제는 이런 추세가 시장 동향을 분석하고 예측하며 투자에 관한 조언을 하는 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켄쇼 같은 소프트웨어는 거대한 데이터를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훨씬 정확하게 분석하고 읽어낼 수 있다. 다음 차례는 금융업 안에서도 고객을 상대하는 직종이 될 거라고 네이들러는 말했다. 기계가 훨씬 더 복잡한 분석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면 금융 고객은 굳이 다른 사람에게 설명을 듣고 조언을 받으려 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네이들러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마치 설교하거나 피아노를 치는 듯 팔을 저으며 말을 이어갔다.

“앞으로 5~10년 안에 이 사람들 대부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건 또 다른 사람들이 아닐 겁니다. 지금부터 10년 뒤의 골드만삭스는 직원 수만 놓고 보면 현재 골드만삭스보다 훨씬 작을 겁니다.”

 

골드만삭스 임원들은 유능한 새로운 금융 분석 툴이 몰고 올 역경에 관해 이야기하기 싫어한다. 나와 이야기를 나눈 몇몇 매니저들은 켄쇼 때문에 아직 해고된 사람은 아무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별로 크지 않을 거라고 주장했다. 네이들러가 미리 내게 주의를 시킨 그대로였다. 네이들러는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 “아마 자동화, 인공지능 같은 화두를 입에 올리는 순간 모두가 입을 다물어버릴 겁니다.”

 

사실 골드만삭스에서 일하다가 기계에 밀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동정의 대상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편으로는 골드만삭스가 갖는 상징성 때문에 인공지능이 가져올 일자리 위기가 어떻게 결판날지 더욱 주목되는 것이다. 만약 골드만삭스의 일자리마저 집어삼킬 수 있는 인공지능이라면 그보다 규모가 작은, 그보다 덜 복잡한 일을 처리해 온 회사들의 일자리는 더 쉽게 대체될 터. 이는 금융업뿐 아니라 다른 산업에도 적용되는 일이다.

 

2013년 9월, 옥스포드대학 학자 두 명은 “고용의 미래”라는 제목의 연구 보고서에서 현재 미국인의 직업 가운데 47%가 앞으로 20년 안에 자동화되어 기계로 대체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로봇이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식의 우려 섞인 뉴스가 쏟아져나왔다. 연구진은 아홉 가지 변수를 토대로 직업이 자동화될 가능성을 예측하는 식을 만든 뒤, 이를 노동부의 데이터를 토대로 선정한 702개 직군에 대입했다. 결론은 명확했다. 이제는 로봇이 공장이나 재고 창고에서 일하는 사람의 일을 대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소프트웨어가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은 이들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겨지던 사무직을 대체하기 시작한 것이다. 핵심은 연산력(computing power)에 있다. 즉, 예전에는 대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사무직마저 기계가 넘볼 수 있게 된 건 컴퓨터의 연산 능력이 향상됐고 이를 이용하는 데 드는 비용이 크게 낮아졌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다. 데이터를 스스로 모으고 분석해 이해한 뒤 해답을 내놓는 켄쇼와 같은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소프트웨어의 등장도 큰 영향을 미쳤다.

 

“고용의 미래” 보고서와 후속 연구를 보면, 직군에 따라 자동화가 미칠 영향의 정도가 크게 다르다. 예를 들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이 굉장히 중요한 의료보건 분야에서는 자동화된 기계나 소프트웨어가 대체할 수 있는 직업이 전체 노동시장 평균보다 적다. 반면에 개발이 한창인 자율주행 자동차를 생각하면 택시나 트럭 운전수들의 미래는 절망적이다. 고임금 직종에 속하는 일자리라고 상황이 딱히 낫지 않다. 변호사를 예로 들어보자. 옥스포드 연구진은 높은 보수를 받는 변호사들도 몇 시간은 걸려야 정리할 수 있는 법률 관련 문서를 찾아내 분석, 정리하는 일을 순식간에 해내는 소프트웨어를 사례로 들었다. 오토메이티드 인사이츠라는 사이트는 이미 농구 경기를 분석하는 기사를 알고리즘에 따라 써낸다. 기자들에게는 탐탁지 않을 기술이다. 하지만 금융업에 미칠 파장은 특히 클 것으로 보인다. “고용의 미래”의 예측만 보더라도 금융업 내의 일자리 54%가 자동화로 사라질 것으로 예측됐다. 다른 어떤 숙련직종보다도 높은 수치다. 이는 금융이라는 분야 자체가 애초에 디지털화된 정보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바탕 위에 서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할 수 있는 예측이다.

 

“고용의 미래” 보고서에는 수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대단히 광범위한 분야에 수많은 변수를 토대로 추정치를 내는 일이다 보니 당연히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어쨌든 금융업계는 기회이자 위기인,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자동화가 가져올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당장 금융 애널리스트 몇 명이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도 문제긴 하지만, 금융업 전체가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는 일이다. 금융공학을 일컫는 신조어인 핀테크(fintech) 업계들은 2014년 총 122억 달러를 투자받았다. 일 년 만에 무려 세 배나 늘어난 액수다. 스타트업들은 쉽게 말해 금융업이 손을 대고 있는 모든 분야에 뛰어들었다. 대출 심사만 해도 신용 등급과 신원 정보를 토대로 사람이 해오던 관행이 바뀌고 있다. 소프트웨어는 대출을 받으려는 사람에 관한 수많은 정보를 여러모로 분석해 대출이 적절한지 판단한다. 로봇 분석원(robo-advisers)이라고도 불리는 소프트웨어는 개인별 맞춤형 투자 포트폴리오를 짜준다. 증권 중개나 투자 자문 같은 일을 해온 사람들은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이미 대부분 월스트리트의 금융 회사들은 몇 년 안에 소프트웨어로 대체될 것이 뻔한 옛날식 보고서를 사는 데 돈을 쓰지 않는다. 은행들은 대신에 아예 켄쇼와 같은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를 해 사들이는 쪽을 택했다. 켄쇼는 이미 2천5백만 달러를 유치했다.

 

월스트리트뿐 아니라 사실상 뉴욕시의 경제 전체를 숙련직 노동자들이 떠받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 금융 애널리스트, 언론, 출판업자, 디자이너가 하는 일은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일로 여겨졌기 때문에 지금껏 뉴욕시의 경제 구조는 어쩌면 이런 변화에 둔감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켄쇼 같은 회사가 몰고 온 변화는 지금껏 자신을 예외라고 여겼던 경제 자체가 직면한 상황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영국의 대표적인 투자은행 바클레이의 CEO 자리에서 해고된 안토니 젠킨스는 지난해 가을 한 강연에서 금융업계 전반에 “우버와 같은 충격(Uber moments)”이 잇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즉, 우버가 택시업계는 물론 물류, 운송업계 전반을 뒤바꿔놓고 있는 것처럼 금융업계도 근본적인 변화가 잇따르리라는 것이다.

“많게는 금융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의 절반 가까이가 일자리를 잃을지도 몰라요. 은행 점포도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겁니다. 아주 보수적으로, 희망적인 상황을 가정하더라도 고용 규모가 20%는 줄어들 겁니다. 좋은 측면도 없지는 않을 겁니다. 가장 비효율적인 부분부터 구조조정이 일어날 것이고, 금융 상품의 투명성도 제고돼 고객들에게 부당한 수수료를 덤터기 씌우는 일 같은 건 줄어들 겁니다. 어쨌든 몇 년 전 금융 위기를 일으키고도 여전히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도덕적 해이가 남아있는 듯한 금융업 전반에 경종을 울리는 일이라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기계가 먼저 일자리를 대체하는 건 상대적으로 단순한 일을 하는 하급 직원들입니다. 임원들은 제일 마지막에 영향을 받겠죠. 이는 가뜩이나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소득 불평등 문제를 더욱 심화할 것입니다.”

 

켄쇼에 투자한 벤처캐피탈리스트 가운데는 네이들러에게 잠정적인 일자리 대체 문제를 가급적 꺼내지 않는 게 어떻겠냐는 조언을 건넨 이들도 있다. 켄쇼의 주 고객이어야 할 은행의 존폐가 달린 문제를 켄쇼가 일으키는 것처럼 받아들여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네이들러는 이들에게 이 문제는 자신의 지적 양심이 달린 문제라며, 잠재적인 파급 효과를 모른 척할 수 없다고 답했다. 네이들러가 사회적인 안전망을 확충하는 데 힘을 쏟는 정치인을 위한 정치 자금 모금 행사에 열심히 참여하는 이유도 일자리에 관한 자신의 예측,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과 켄쇼가 가져올 변화, 즉 켄쇼가 만들어낸 기회와 앗아간 것들을 정확히 알고 행동하는 점이 자신이 궁극적으로 창업가들과 다른 점이라고 말한다. 그는 사업을 하고 있지만, 사업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미래를 좀 더 정확히 예측하는 데 있다는 점에서 분명 다르다.


켄쇼의 주요 고객은 골드만삭스 안에서도 특히 거래소에서 일하는 영업직 사원들이다. 최근 들어 이들은 투자자들로부터 걸려오는 문의 전화에 답할 때 소프트웨어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에너지 관련 주식이나 현물 상품을 사고파는 투자자가 갑자기 심각해진 시리아 내전 상황에 맞춰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물었을 때 켄쇼에게 대신 맞춤형 보고서를 재빨리 만들어내게 시키는 식이다. 예전에는 담당 직원이 직접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관련 기사를 찾아보고 시장 동향을 분석한 뒤 조언을 건넸다. 사람의 기억에 기댄 작업인지라 용량에도 한계가 있고 정확도도 떨어졌다. 특별히 신경 써야 하는 중요한 고객이면 골드만삭스 내의 시장 분석 전문가(research analysts)들이 동원됐다. 이들이 하는 일이라고 해도 대단히 특별할 건 없다. 마찬가지로 예전 관련 뉴스 기사나 시장 동향, 분석 보고서를 더 많이 찾아서 모으는 일이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달려들어도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게 마련인데, 분석을 끝내고 답을 손에 쥐었을 때쯤에는 시장 상황이 또다시 바뀌거나 투자 기회가 사라진 뒤라는 점이 문제였다.

 

켄쇼는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이제는 문의를 받은 담당 직원이 켄쇼에 접속해 검색창에 관련 단어를 입력하면 된다. 네이들러가 직접 내게 시범을 보여줬다. 인터넷에서 검색어를 입력하듯 켄쇼 검색창에 “시리아”라고 쳤더니, 시리아 내전과 관련된 다양한 기사와 정보가 마치 구글 검색 결과처럼 주제별로 묶여 나왔다. “IS 진압 현황” 관련 문건 25건, “주요 전황과 ISIS가 저지른 잔혹 행위” 관련 문건이 105건 검색됐다.

 

켄쇼는 똑똑한 검색어 자동완성 기능처럼 검색어와 관련된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며 훑어낸다. 이 과정은 인간의 개입 없이 소프트웨어가 스스로 학습한다. 어떤 의미에서 바로 이 부분이 켄쇼라는 소프트웨어의 가장 복잡하면서도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는 트레이더나 애널리스트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관련 검색어를 직접 입력하고 위키피디아부터 예전 기사까지를 일일이 찾아야 했다. 켄쇼의 검색 엔진은 사건을 추상적인 특징에 따라 분류한다. 예를 들어 ISIS가 시리아 중부의 팔미라(Palmyra)라는 도시를 장악했다는 내용과 프랑스군이 공습을 했다는 내용은 내전이 격화되고 있다는 카테고리 아래 묶이는 동시에 각각 어느 쪽이 공격하는 쪽이고 어느 쪽이 공격을 받은 쪽인지를 켄쇼가 스스로 인식해 검색 결과상에 분류해 표시한다.

 

소프트웨어는 또한 어떤 사건을 접했을 때 사람들이 미처 생각해내지 못하는 자산 가격의 변화를 찾아낸다. 켄쇼가 알려준 내용을 바탕으로 사람들은 다시 한 번 검색을 해서 필요한 정보를 얻는다. 이러한 특징을 제대로 장착하기 위해 네이들러는 구글에서 세계 모든 도서관의 대분류 작업에 참여했던 머신러닝의 귀재를 영입했다.

 

어떤 사건 묶음을 선택한 뒤에 담당 트레이더는 옵션 메뉴에서 특정 시기별, 혹은 특정 투자나 특정 자산 관련 정보만 솎아낼 수 있다. 가장 넓은 범위의 자산이란 독일 주식, 호주 달러, 다양한 원유 등 세계 40여 가지 주요 자산 묶음이다. 어느 것이든 원하는 정보를 입력한 뒤 보고서 작성(Generate Study) 버튼을 누르면 몇 분 안에 도표로 가득한 보고서가 생성된다. “시리아 내전 격화”라는 주제 아래 묶여있는 27개 사건으로 네이들러는 시연을 계속했다. 첫 번째 도표는 내전이 격화된 이래로 몇 주 동안 천연가스, 원유 가격이 기대치를 밑돌았고, 반대로 아시아 주식시장과 미국, 캐나다 달러가 호조를 보였다는 내용이었다. 보고서에는 시리아 내전으로 일어나는 사건 중에서도 어느 유형의 사건이 어떤 식으로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하여 과거 동향을 토대로 살펴봤을 때 어디에 무게를 두고 투자를 진행하는 것이 최적의 거래 전략인지도 포함됐다.

 

네이들러는 랩탑 컴퓨터를 닫았다. 이 모든 일이 불과 몇 분 안에 이뤄졌다. 네이드러는 비슷한 수준의 보고서를 사람이 작성하려면 총 40시간 정도의 노동이 필요할 거라고 말했다. “그냥 40시간이 아녜요. 평균 연봉 35만 ~ 50만 달러를 받는 사람들의 40시간이죠.”

이토록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켄쇼를 처음 구상한 것이 불과 3년도 안 된 일이다. 2013년, 당시 박사과정 학생이던 네이들러는 (미국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제도 보스턴 지부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당시 유럽 경제는 유로존 위기에 그리스 총선 여파 등으로 상당히 불안정했다. 금융시장 전체가 여기에 영향을 받아 흔들리고 있었다. 비슷한 과거 사례가 금융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찾아보던 네이들러는 뜻밖에도 규제 당국은 물론 은행에도 이를 체계적으로 분석해낼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저 예전 뉴스들을 열심히 뒤져보는 일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는 실정이었다. 연구하다 남는 시간에 네이들러는 일본 관련 학생 동아리를 통해 알게 된 구글 프로그래머 출신 친구와 이 이야기를 하게 됐다. 2008년 금융 위기에 정치가 미친 영향을 주제로 써온 박사 논문이 마무리 단계에 와 있었지만, 네이들러는 쓰던 논문을 잠시 접고 대신 작은 팀을 꾸려 자신의 아이디어로 구글의 벤처캐피털 팀으로부터 초기 자금을 투자받았다. 이어 다른 곳에서도 속속 투자를 받았는데, 포브스에 따르면 이 가운데는 CIA의 벤처캐피털 팀도 포함돼 있다.

 

켄쇼의 본사 사무실은 여전히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의 하버드대학 캠퍼스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있다. 1층에는 오랜 이발소가 있는 건물의 3층이다.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 30여 명은 아마 몇 년 전이었다면 골드만삭스에 들어갔을 것처럼 보이는, 하나같이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젊은 인재들이었다. 서서 일할 수 있는 책상, 편한 옷차림, 베개와 일본식 다다미 매트가 구비된 명상실, 체스판과 포커 테이블이 있는 게임방 등이 골드만삭스 대신 이곳에서 일하기로 한 이들에게 주어진 혜택 가운데 당장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었다.

내가 케임브리지에 있는 사무실을 방문한 건 크리스마스 연휴가 얼마 안 남은 12월의 어느 날이었다. 도착했을 때 직원들은 마니또 산타클로스 게임으로 서로에게 몰래 준 선물들을 뜯어보고 있었다. 네이들러와 주요 임원 몇 명과 회의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중간중간 직원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가장 궁금한 건 역시 켄쇼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였다. 그래서 나는 임원들에게 자동화와 그로 인한 일자리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네이들러가 각각 어느 시점에 꺼냈는지부터 물었다.

 

“이 일에 관한 이야기와 거의 동시에 나왔죠.”

기술 부문 최고 책임자(CTO)인 매트 테일러(38)가 말했다. 테일러는 회사 직원 중에서도 초기 멤버에 속한다.

“첫째 날에요.”

켄쇼를 만든 주역 가운데 한 명인 최고 설계자(chief architect) 마틴 카마초(20)의 답도 비슷했다. 카마초는 15살에 하버드에 입학했다.

카마초는 켄쇼에서 일한 첫 여름 어느 날 밤 네이들러네 집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 그들은 외계인이 만들어낸 복제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그린 공상과학 영화 <오블리비온(Ovlivion)>을 같이 보고 그 사회경제적 함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에 네이들러는 엔지니어링 팀원 전원을 케임브리지에서 가장 근사한 식당 중 하나인 헨리에타스 테이블에 초대해 식사를 함께하며 자동화가 먼 미래에 끼칠 영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네이들러는 컴퓨터가 인간의 모든 필요와 수요를 정확하게 예측할 만큼 똑똑해질 먼 미래에는 강력한 인공지능이 우리를 풍요의 시대로 이끌어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앞으로 몇십 년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 거라고 내다봤다. 아직 컴퓨터가 전반적으로 사람만큼 똑똑하지는 않지만, 사람의 일을 대신 해서 돈을 벌어다 주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만큼 똑똑한 일종의 과도기가 되리라는 것이다.

 

카마초는 네이들러보다는 좀 더 낙관적이었다. 몇 년 전에 컴퓨터를 기반으로 하는 수학 증명 프로그램이 발명됐을 때도 수학 연구 관련 일자리가 줄어들지 않았다는 말을 덧붙였다. 테일러도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모두가 할 일은 충분히 많을 거로 생각해요.”

새로운 소프트웨어의 등장으로 금융업에서 해방된 노동자들이 오히려 더 가치 있는 일을 찾아갈 것이라는 식의 낙관론은 골드만삭스의 임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에게서도 종종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은 세상에 있지도 않은 새로운 유형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데도 자동화, 기계화가 한몫할 거라는 이도 있다. 은행 업무 일부를 대신할 수 있는 자동화기기(ATM)가 보급되었어도 은행의 여러 지점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지는 않지 않았냐고 주장하는 임원들도 있었다.

 

이런 비판은 옥스포드 연구진이 쓴 “고용의 미래” 보고서에 대한 비판과도 궤를 같이한다. 현재 존재하는 직업의 47%가 자동화와 함께 기계의 몫이 되더라도, 많은 뉴스 기사의 우려대로 현재 인구의 47%가 일자리를 잃게 되는 건 한마디로 기우라는 말이다. 자동차는 마부와 마구간에서 일하는 사람의 일자리를 앗아갔다. 하지만 동시에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주유소, 휴게소에서 일하는 사람이 필요해지면서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했다. 오늘날 증권 중개인들이 하던 일 등 일부가 자동화돼 기계의 몫이 된 건 사실이지만, 동시에 금융 관련 소프트웨어의 성공 덕분에 더 많은 사람이 금융 관련 정보를 얻게 되고 투자의 영역도 더 넓어진 측면이 있다.

 

“고용의 미래”의 주 저자인 칼 베네딕트 프레이는 새로운 기술이 기존 직업을 앗아가는 동시에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일자리 수에 변화가 없다고 해서 전체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석하면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예를 들어 섬유 산업에 기계가 도입되고 공정이 자동화되면서 미국 남부 많은 지역은 실질적인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미국 전체 실업률은 거의 그대로였다. 최근 발표된 새로운 연구들을 보면 자동화기기의 도입이 실제로 은행 지점과 지점에서 일하는 은행원의 숫자를 줄였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반면 콜센터에서 일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숫자가 늘어난 것이 일종의 착시 현상을 일으켜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든 문제를 가렸다고 볼 수도 있다.

아마도 기계가 전반적인 고용 수준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보는 게 불편하지만 진실에 가까운 분석일지 모른다. 퓨리서치 연구소가 미래학자와 기술자를 대상으로 한 최근 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절반은 미래에 일자리가 사라지는 속도가 새로 일자리가 생겨나는 속도보다 빠를 것이라고 답했다.

 

골드만삭스의 기술 분야 실무 책임자인 마틴 차베스는 무척 활기찬 사람이다. 수염을 기른 차베스는 켄쇼에 대한 열정적인 찬사를 이어갔다. “지금까지는 장인이 물건을 만드는 것처럼 일종의 맞춤형 방식으로 하나하나 해오던 일이 켄쇼가 일으킨 산업혁명으로 대량 생산기에 접어들었달까요?”

차베스는 켄쇼 때문에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거라고 말했다. 켄쇼가 하는 일은 이전에는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복잡해서 사람들이 좀처럼 시도조차 하지 않던 일이라는 것이다. (소프트웨어를 통해 검색할 수 있는 사건의 종류가 계속해서 제한적일 거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켄쇼 발 충격과는 상관없이 차베스가 계속해서 박차를 가해 온 골드만삭스의 디지털화 작업 덕분에 이미 골드만삭스에서 일하는 이들의 특징이 많이 바뀌었다. 즉, 지난 몇 년간 전체 직원 수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신입사원 가운데 이공계 출신의 숫자는 매년 5%씩 늘어났다. (골드만삭스는 월스트리트 기업 가운데 직원 수가 많이 줄어들지 않은 몇 안 되는 곳이다) 차베스는 말을 이었다. “앞으로 10년이나 20년 뒤에는 지금 우리가 누구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새로운 직업이 분명 생겨나겠죠.”

 

온라인이 오프라인 거래를 가장 빠르게 대체한 분야 가운데 하나인 주식 거래의 변천사를 살펴보면 자동화가 골드만삭스 같은 조직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주식은 이제 온라인상에서 사고 팔린다. 차베스는 온라인 거래가 시작되면서 옛날처럼 전화로 주식을 사고파는 일을 하는 직원 숫자가 600명에서 4명까지 줄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이야기 일부분에 불과하다. 전통적인 트레이더는 새로운 거래 방식 자체를 개발하고 관리하는 프로그래머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겼다. 나아가 고속 거래(high-speed trading), 즉 빠르게 사고파는 거래를 관장하는 데이터 센터에는 새로운 유형의 일을 해줄 직원이 필요하다.

 

골드만삭스는 정확히 직종별 인적 구성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골드만삭스 온라인 트레이딩 부서에서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일했던 폴 초우는 트레이더 열 명이 예전 방식으로 하던 일을 프로그래머 한 명이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트레이더 인력만 놓고 보면 규모가 1/10로 줄어든 셈이다. 지난해 골드만삭스가 마지막 트레이더를 맨해튼 사무실 4층에서 다른 곳으로 옮긴 것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사였다.

 

자동화라는 것이 또한 칼로 두부 자르듯 진행되는 과정이 아니다. 이는 골드만삭스의 주식거래 운영방식만 봐도 알 수 있는데, 초우가 MIT를 졸업하고 처음 골드만삭스에 입사했을 때만 해도 아침마다 거래 시스템에 일일이 접속해서 각 프로그램이 내놓은 투자 결과에 실수는 없는지 확인하는 것도 초우에게 주어진 일이었다. 초우 옆자리에는 전화로 매수, 매도 주문을 받아 거래를 진행하던 시절부터 일해온 여성 트레이더가 있었다. 그녀는 초우를 비롯한 신입 사원들에게 거래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 눈여겨봐야 하는 항목, 실수를 막기 위해 주의해야 할 점을 설명해줬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컴퓨터 알고리즘 자체가 사람이 손수 확인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실수할 확률이 낮다는 것이 거듭 증명됐다. 옛날 방식의 트레이더였던 여성은 골드만삭스를 떠났다. 그리고 초우는 모든 시스템에 일괄 로그인한 뒤 결과를 스크린 하나에 종합해 띄우는 프로그램을 스스로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을 처음 선보인 날 프로그래머이기도 한 상사 한 명이 초우에게 했던 말을 초우는 아직도 기억한다. “이거야 원, 내가 이제 회사 나와서 할 일이 진짜 없어졌는걸.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초우가 만든 소프트웨어가 기존에 사람이 하던 일을 처리하는 사이 초우는 더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컴퓨터에 새로운 거래 전략을 가르치고 입력하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했던 반복적인 모니터링보다 훨씬 보람찬 일이었지만, 결국에는 이 또한 쳇바퀴 도는 일처럼 느껴졌다. 초우는 2010년 골드만삭스를 떠나 실리콘 밸리로 향했다. 이미 초우가 속한 팀은 그가 입사했을 때보다 규모가 더 작아져 있었다. 초우는 아내, 그리고 다른 창업자 두 명과 함께 옵션거래 플랫폼인 레저X(LedgerX)를 창업해 운영하고 있다.

 

대화가 계속되면서 네이들러는 켄쇼가 골드만삭스 자체의 일자리를 없앨 거라는 의견에서는 한 걸음 물러서는 듯했다. 그렇지만 켄쇼와 다른 금융 스타트업들이 급융업계 전반에 뿌리를 내리면서 지금 있는 일자리들이 줄어드는 건 불 보듯 뻔한 이치라고 강조했다. 또한, 골드만삭스 말고 다른 회사에서는 일자리가 줄어드는 속도가 훨씬 빠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골드만삭스가 켄쇼와 독점 계약을 맺었던 것은 지난 여름까지였다. 계약이 만료되자마자, 네이들러는 제이피모건 체이스, 뱅크 오브 아메리카와도 계약을 맺고 켄쇼의 서비스, 보고서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은행들이 제공하는 일자리에 소프트웨어 말고도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야 수없이 많을 것이다. 현재만 하더라도 은행들은 경기 침체에서 생각보다 더디게 회복하는 세계 경제, 금융위기 이후 강화된 규제 때문에 몸집을 줄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위기는 동시에 저비용 고효율 경영 방식에 대한 수요를 높였다. 실수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지금껏 맡겨온 일을 훨씬 싸고 투명하며 더 확실한 방식으로 할 방법이 검증된다면 어떤 은행이든 이를 반기지 않을 리 없다.

차베스에게 일자리가 줄어드는 속도와 새로 생겨나는 속도에 대한 견해를 묻자, 차베스는 그건 진짜 아무도 모르는 문제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우리 시대에 던져진 가장 흥미로운 질문 가운데 하나 아닐까요?”

 

자동화에 관한 “고용의 미래” 보고서를 쓴 옥스포드대학의 프레이는 혁신이 과거만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지난해 스웨덴 학자인 토르 버거와 함께 쓴 논문에서 프레이는 1980년대에는 많은 미국인이 10년 전에는 없던 직업을 갖게 됐다고 썼다. 그 당시 IBM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추세는 1990년대 들어 둔화됐고 2000년대를 지나면서 사실상 사라졌다. 프레이는 새로 생겨나는 일자리 대부분이 개인 트레이너나 바리스타 등 어떤 의미에서 소수의 부자에 기대는 저임금 직종이라고 설명했다.

 

“갈수록 기술이 일자리를 창출하기보다는 노동을 불필요하게 만들고 있는 거죠.”

최근의 기술 발전은 대부분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에서 이뤄진다는 점이 한 가지 이유가 될 수 있다. 즉, IBM이나 델은 새로운 고객에게 컴퓨터를 한 대 팔 때마다 그 컴퓨터를 제작하고 조립할 노동자가 필요했다. 반면 페이스북이나 켄쇼의 프로그램, 알고리즘, 플랫폼은 사실상 추가비용 없이 무제한으로 복제될 수 있다. 초우가 만든 프로그램만 보더라도 이론적으로는 바로 다음 날 전 세계에 있는 모든 골드만삭스 거래팀에서 쓰일 수 있었듯이. 1970년대 디트로이트에서는 자동차 부품을 실제로 만드는 건 로봇이더라도 여전히 한 번에 한 대씩 차를 찍어냈다. 한꺼번에 여러 대를 찍어내는 데는 분명 물리적인 한계가 있었다. 초우는 골드만삭스와 실리콘 밸리에서 시간을 보낸 뒤 자동화 시대의 양상이 과거와 명백히 다르다는 것을 절감했다.

 

“(새로운 기술이) 일자리를 대체하는 속도 만큼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내지는 못하고 있어요.”

켄쇼를 보면 딱 그렇다. 사업을 시작한 지 3년도 안 돼 세계에서 가장 큰 은행 세 곳을 고객으로 삼은 켄쇼가 현재 고용하고 있는 직원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사무실 두 곳을 겨우 채울 수 있는 50여 명이 전부다. 최근 켄쇼는 뉴욕 사무실을 좀 더 넓은 세계무역센터 건물로 옮겼다. 더 큰 책상을 들여놓을 공간이 생겼고 사람도 더 뽑기는 하겠지만, 새로운 공간 대부분은 공동 부엌, 당구대, 식물을 키우는 정원으로 쓰일 예정이다.

 

가파른 성장에 힘입어 켄쇼의 가치는 이미 수백만 달러에 육박했고 창업자인 네이들러도 그가 가진 켄쇼 지분 가치에 따라 백만장자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켄쇼의 대성공이 미국 노동시장 전체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테크 분야에서 일하는 사업가들 가운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 꽤 있을 거예요. 테크 기업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그것도 기술 관련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만들어낸다고요. 켄쇼만 해도 그래요. 서류상으로는 분명 수백만 달러 가치를 창출해냈어요. 그건 사실이긴 해요.”

지난여름 네이들러를 처음 만나 같이 점심을 먹었을 때 네이들러는 어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분석을 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겠죠. 하지만 우리가 매우 높은 연봉을 받는 극소수의 일자리를 창출해내는 대가로 적당히 높은 연봉을 받아 온 상당히 많은 사람의 일자리를 앗아갔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사회적으로 손익 계산을 해보면 어떻게 될까요? 기계에 밀려난 사람들을 전부 고용할 수 있는 새로운 산업이 갑자기 등장하지 않는 한, 사회가 제공하는 안전망이 부재하고 정책적 개입도 없는 사회에서 이는 분명한 손실입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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